슬픔을 안고 비행하는 사람, 지수 이야기 ⓶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이것은 서평도 인터뷰도 아니여 "내가 만일 새라면 그 날개를 접지 않을 테요. 내가 만일 달이라면 초승이든 그믐이든 빛을 놓지 않을 테요." -지수가 보내준 답신 중에서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원진: 최근에 소식을 들었어. 어깨에 멋진 게 생겼다고. 달이랑 새가 생겼다고. 타투가 마이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요즘 화두인 것 같아서, 너한테 타투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어. 내가 해석을 하기로는 타투는 어쨌든 내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잖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일단 슬픔이 깊은 고찰을 동반한다면, 네 말대로 공부를 통한다면, 고통도 되고 연대도 되고 심지어는 기쁨도 되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다고 느꼈는데. 혹시 타투가 너한테도 슬픔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을까?
지수: 일단 될 수 있다고 먼저 말을 하는데. 세 번째 타투가 새랑 달을 새긴 거거든. 첫 번째 타투부터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 제목이 ‘자연에서 오는 안정’이거든. 그림도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제목을 보고 바로 결정을 했단 말이야. 내가 너무 힘들게 살았던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서울에서 너무 힘들게 살았는데, 항상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어. 잔디밭에 누워서 텅빈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는 건데 , 그 행위가 너무 꽉 차고 하늘도 가득 차보일 것 같은 거야. 역설적으로. 그런데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슬펐어. 어떤 날은 고개를 처박고 울었어. 너무 힘드니까. 그래서 내 첫 번째 타투에는 슬픔이 무조건 담겨있어. 웃긴 건 생활만 보면 난 ‘도시파’야. 그래도 자연이 주는 안정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 두 번째는 나비 두 마리, 세 번째는 새 세 마리하고 달인데, 어떻게 보면 다 하늘을 유영하는 것들이야. 철저하게 의도한 건 아닌데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 그림들을 완성했어. 항상 그랬잖아. 신화에서부터 인간은 새를 동경했잖아.
원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지.
지수: 그래서 비행기까지 만들어냈잖아. 그런데 지금까지도 인간이 맨몸으로 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인간이 날개를 가진 생물로 진화를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나도 날 수 있는 새를 동경해. 얼마 전에 인천 영종도를 갔다 왔는데 내가 일몰을 보고 있었어. 새 한 마리가 갯벌에 닿을듯 말듯 10센티미터 차이에 두고 슥- 지나가는 거야. 그게 슬로우모션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 아름답고, 곡선과 아찔한 비행이 놀랍고 멋있어서 동경심이 들었던 거지. 나도 인간인지라 날지 못하는 건 참 슬퍼. 왜 슬프냐면, 날 수 있다면 일상적인 건 차치하고 남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여기서도 세월호가 떠올랐어. 가라앉는 배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어디서 떨어지는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 거고.
원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반대로 말하면, 하강에 대한 두려움이 될 수도 있겠네?
지수: 그걸 내가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렇지 못해서 아프거나 사라지는 생명체가 생기는 게 슬프게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복합적인 슬픔, 동경, 그런 걸 합해서 새랑 달을 새겼지. 예쁘기도 하고.
원진: 내가 질문이 있는데… 물론 나도 슬퍼, 세월호 슬프지만, 이 슬픔의 원인을 정확하게 나 스스로는 아직 찾지 못했어. 너는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너의 생각에서 내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지수: 일단은 솔직히 말하면 또래여서 더. 거기에 학생이 아닌 신분의 희생자들도 있었지만, 유독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기사에 나고 어린 학생들의 죽음이 더 많이 슬픔의 대상으로 회자되는 건, 내가 또래여서. 그건 정확하게 인정을 해야 될 것 같아. 누구는 슬프고 누구는 덜 슬프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같은 처지라고 느꼈을 때 드는 슬픔이 조금 더 크다는 걸 인정해야 될 것 같고. 아까도 말했지만 슬픈 일이 참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런데 그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목격한 일이야. 손 놓고 그냥 봐야 되는구나.
원진: 너의 얘기에서 내가 힌트를 얻은 것 같아. 어린 나이라는 게 그들은 아직 완전하지 않고, 그래서 100% 능동적으로 행동했다고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그게 온전히 그들만의 책임은 아닌 거지, 그거에 대해서 더 안타까움을 느끼겠구나.
지수: 나도 너의 말을 듣고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긴 해. 내가 정확히 이걸 알고 슬퍼하는 걸까, 누군가가 죽었다는 게 슬픈 걸까,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되네.
원진: 어떻게 보면 인간의 무력함을 너무나 목격한 사건이었고, 거기에 내가 대입되기 때문에, 나의 무력함, 국가의 무력함, 인간의 무력함을 느껴서 사람들이 더 애통해하는 게 아닐까, 라는 정리를 나름 하게 되네. 그리고 더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몰랐는데 있더라고. 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더라고. 나도 너처럼 자연을 좋아하지만 사실 새와 나비, 나는 것에 대한 동경보다 깊은 뿌리를 가진 것들에 대한 동경이 있어. 나무를 너무나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고. 되게 멋부리는 것 같지만 너가 동경하는 거나, 내가 동경하는 거나 어쨌든 중력을 거스르는 거잖아. 그런 점에서 차이와 공통점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
지수: 타투로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게 대단하네. 타투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너한테 역질문을 하고 싶은데.
원진: 그래? 그럼 그거 얘기해볼까?
지수: 타투에 대한 답변을 내가 했으니까 나도 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가지고. 최근 류호정 의원의 파격적인 행보가 있었는데, 무조건 젊은 의원이 했다고 해서 파격이라고 붙이는 것도 의문이긴 한데, 하도 파격, 파격하니까. 그런 행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원진: 나는 관련해서 나오는 기사들이 프레이밍을 너무나 잘못하는 것 같고 타투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어. 무조건 보라색 원피스와 BTS를 엮는다거나. 물론 나도 이해가 그리 깊은 건 아니지만, 몇 기사를 보면 대강 감이나마 잡을 수 있거든. 설명하자면, 불법이기 때문에 불법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거지. 그걸 악용해서 신고한다고 하면서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성범죄가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을 법 제도 안으로 끌어오는 게 나는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 그러한 댓글을 많이 봤어. 류호정 의원을 보고, ‘젊은 것이… 지금 더 큰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냐’, 이런 댓글을 많이 봤는데. 나는 그때마다 생각한 게, ‘아 그러라고 300명 뽑아놨잖아’ 였어. 이러한 마이너한 곳까지 관심을 가지고 정말 다양한 목소리를 내라고 300명을 뽑아 놨잖아. 타투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게 청년정치지, 라고 생각을 했어. 이런 이슈를 보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물어주길 바랐어. ‘이러라고 300명 뽑아 놨잖아’,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이 질문 해줘서 나도 고맙고 속이 시원해. 물론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그렇게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뽑아 놨잖니. 지수: 아주 통쾌한 마무리입니다. 나도 너를 떠올린 부분이 있어. 중간도 아니고 챕터도 아니고 책 머리에서.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5쪽)
원진: 신기한데?
지수: 내가 매주 두 번씩 너의 글을 읽고 있잖아. 좋은 글, 멋진 글, 어쩔때는 아쉬운 글, 눈물이 나는 글도 있었는데, 나는 나쁜 글은 한 번도 없었어. 매주 몇 편 읽어나가는데 어느 날 이 문장을 읽고서 대단하다 하고 너의 글을 읽는데, 원진이가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잘 찾아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이 문장이랑 딱 맞아 떨어지면서 드는 거야.
원진: 알아줘서 고맙네.
지수: 내가 독자로서 느끼기에는 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아. 적확한 어휘나 적절한 배치나 구성이 아름답게 되는. 내가 뭐라고 썼냐면, “모국어의 바다 속에서 너는 아름다운 문장을 잘도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더 분명히 발전할 거다.”
원진: 너는 너를 대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너가 대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요즘 별로라고 느끼는 글을 쓰는데도 너는 잘 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처럼, 내가 느끼지 못한 걸 남의 눈을 통해서 느낄 수 있잖아. 나도 언젠가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거든. 이미 썼다니까 이제 더 편하게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수: 이 문장이 작가의 모든 문장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 너무 인상 깊었어. 원진: 작가는 이 책을 나누는 5부 중에 한 부를 ‘시’에 할애해. ‘시는 없으면 안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시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는데, 시를 좋아하니? 내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사실 시적인 삶이 뭔지 모르겠어서. 나는 그냥 인간이 존재하는 자체로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체로 시라고 생각해서, 너무 막 ‘시가 모든 것’,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실은 들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거든. 지수: 나도 시가 뭐 인생을 관통 한다거나 세상을 다 담아낸다거나, 이런 건 과대평가한 감이 있지 않나 싶었는데, 가끔식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시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글자랑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 시가 돌진하는 느낌? 그래서 거기서 깨달음이든 감탄이든 슬픔이든 희열이든 느끼는 게, 물론 에세이나 소설에서도 느낄 수도 있지. 그런데 시는 통째로 나가온다는 거에서 다른 문학이랑 다르지 않나. 함축의 함축. 원진: 그럼 너에게 돌진한 시가 있니? 지수: 언젠가 너한테 답신으로 보냈어. 나에게로 나는 나의 기쁨을 안다 남이 무시할 수도 있는 나의 기쁨을 안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에게로 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불안을 본다 남이 한심해 할 수도 있는 나의 불안을 응시한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 순간에 나의 불안은 나에게 화해를 청하고 더딘 소멸을 약속해 주었다 / 강준서 <파도 아래 선한 눈> 중에서 내가 1~2년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나는 공황장애가 있는데 아직 약을 먹고 있어. 정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사실 없었으면 좋았을까… 확신을 못하겠어. 힘들었는데 이게 나를 너무 많이 바꾼 거야. 이 시에서 나의 기쁨을 안다고 하잖아. 나는 나의 기쁨을 몰랐어. 공황장애 치료를 하면서 의사쌤이 하고 싶은 거 하시라고, 그렇게 말을 해주는데, 치료라는 명목이 있잖아. 그럼 좀 더 당위성도 생기고, 나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는 구나, 그런 것도 생기고. 내가 뭘 하면 기뻐하는지 그때부터 찾기 시작한 것 같아. 그게 설령 남이 무시하는 거더라도.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한테 한발자국 간다, 이게 너무 인상적이었고. 그 다음에 불안을 본다는 부분도, 공황장애가 불안장애잖아. 너무나 정확한 표현인 거야. 나의 불안을 본다는 것 자체가 치료인 거지. 이것도 남이 한심해 할 수도 있어, 친구한테 말 한 마디 한 게 뭐가 그렇게 불안해하냐고 한심해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게 너무 불안해’ 하고 응시하는 게 그것도 나에게 더 다가가는 거라고. 그렇게 할 때 불안이 나에게 화해를 청한다는 게 희망을 주는 시라고 해야 하나. 불안 자체가 힘든 존재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좋다고 여겨지잖아. 그런데 있음으로써 나에게 더 다가가고 결국에는 걔가 없어질거라는 희망도 있고, 그걸 어떻게 다 시에 담아 냈을까. 그런 의미로써 이 시를 안 좋아할 수가 없더라고. 원진: 이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아. 잠은 가능성을 위한 거다,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선 잠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지수: 딱 그거야. 불안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불안이 있어야 하니까. 원진: 나는 정신적으로 안정적이라 생각을 하는데, 가끔 방어기제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나는 우울이란 키워드를 좋아하거든, 이게 있어도 그냥 이게 나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확신은 할 수가 없어. 언젠가 이 우울에 내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더 의식하면서 살아가는데. 어쨌거나 이것도 내가 사는 방식이고. 지수: 불안과 우울은 다르기도 하지. 진단을 공황도 받고 우울도 받았는데 약이 둘다 도움이 되긴 했는데 우울에 많이 도움이 됐어. 우울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불안은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고 해. 그런데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너무 신기한 거야. 이게 치료라는 의학이라는 것의 힘이구나, 왜 다니라고 하는지도 알 것 같고. 그런데 불안은 사소한 게 정말 많기 때문에 오히려 우울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것 같아. 아까 말했듯이 불안은 아예 없애는 거라기보다 극복하는 거고, 우울보다는 사소하지만 오히려 나를 발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진: 어쨌든 너가 긍정적으로 이용을 하는 거니까. 지수: 그걸로 변화가 있었지. 내가 느끼고 말할 정도로 변화가 있었지. 원진: 현대사회가 너무나 그렇게 되기 쉬운 환경인 것 같아서. 지수: 엄청 쉬워. 나를 쫓아오는 사람도 많은데 내 앞에 있는 사람도 많고. 앞뒤를 다 신경 써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몸이 열 개 였으면 좋겠다, 눈이 뒤통수에도 달렸으면 좋겠다, 그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원진: 이런 주제가 나오면 내가 관심 있는 주제기도 하고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다루어내기 힘들단 생각을 하고, 그래서 말을 더 아끼게 돼. 나는 그렇다할 정도의 경험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아끼게 되는 것 같아. 지수: 그런데 신기하게 병원까지 다니는 사람도 '내가 정말 그정도인가', 라는 생각도 해. 개인차일 수도 있고. 입원까지 한 사람도 내가 우울하다고 말 못할 수도 있어. 자기가 그 정도인가 싶어서. 반대로 약물치료없이 상담만 하는 사람도 자기한테는 너무 힘든 경험이어서 한 시간 동안 말할 수도 있고. 너에게 깊은 우울이나 불안이 없었다면 다행이고, 있었는데 너가 그 정도인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보기엔 너의 안정적인 정신 세계가 느껴져. 원진: 그래? 나는 항상 내가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어서야. 왜냐하면 우리 엄마도 그랬고 우리 이모도 그랬고, 나는 그걸 들었고. 그러니까 나도 언제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서 더 열심히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 지수: 그런데 그게 벅차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 원진: 맞아. 그래서 항상 그걸 경계하고 있어. 그래서 너무 생각이 길어지면 그냥 끊어, 안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거지. 의식하고 그 전에 끊는 거. 지수: 그런 말은 의사쌤도 하거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라, 꼬리를 물지 말아라. 원진: 오늘 대화를 통해서 난 너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어. 그런데 글로 옮겨졌을 때 읽는 사람들은 이게 너라고 생각할 거잖아. 이게 너의 부분일 수 있겠지만, 다는 아니라는 얘기를 독자들에게도 너에게도 하고 싶었어. 어쨌든 글이라는 게 단편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조금은 우려스러워서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어. 이게 이 사람의 다는 아니다. 너는 너의 새로운 부분을 알았다면, 이걸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거고. 지수: 너가 우려했다는 것도 고맙지만 내 최근 관심사와 최근 인생에 대한 생각을 책과 함께 다 녹여냈어. 그러니까 부분이긴 한데 전체도 맞습니다. 원진: 그렇구나. 너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거니까. 마지막으로 혹시 또 다른 외국어에 입문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라시의 노래 하나를 추천해준다면? 지수: 아라시의 해피니스(Happiness). 유튜브에 치면 나옵니다. **클릭해서 들어보세요 嵐 - Happiness [Official Music Video] 슬픔을 공부하며 살겠다는 다짐의 첫 노력으로 난, 지수의 슬픔을 공부했다. 동시에 나의 슬픔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슬픔을 팔에 새기고 슬픔을 안고 사는 지수가 마지막에 추천해준 노래는 행복(Happiness)이라는 제목이었다. 웃음이 픽 났다. 앞선 내용이 부분이든 전체이든 어떠하든, 결국엔 행복으로 마침표를 찍는 게 지수답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도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다친 영혼을 달래는 일 뿐이다”(392쪽) 세상엔 많은 슬픔이 존재한다. 함께 하는 슬픔은 어쩌면 연대일수도 희망일수도 역설적으로 행복일 수도 있다. 깨어나기 위해 잠에 들어야 하듯, 나와 화해하기 위해 불안과 우울이 있듯, 힘겨운 상황에서도 손 놓지 않는 행복을 맛보기 위해 슬픔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안고 비행하는 지수의 도착지가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노을, 바다 그리고 여러 나라 언어로 우는 새가 있으면 좋겠다.
<이것은 서평도 인터뷰도 아니여> -서평이라기엔 책의 문장을 빌려왔을 뿐인, 인터뷰라기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있지 않은. 기묘한 대화, 그곳에서 우리 삶의 한 조각을 찾으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