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교에서
:여전히 열다섯 번째 원진메일
2021. 08. 02
잠수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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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반포한강공원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활기차다. 맞은 편 용산구 서빙고동, 불규칙하게 배열된 불빛들이 저마다 다른 색과 밝기로 빛난다. 저 옆 길쭉한 주황색 빛이 나는 다리는 반포대교라 한다. 반포대교 아래 작은 다리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오락가락한다. 2층 짜리 다리의 풍경이 흥미롭다. 더운 날씨 탓에 유일한 취미라 할 수 있는 걷기를 못해 몸이 찌뿌듯하던 차, 저길 걸어야겠다. 

꽤나 낮고 긴 다리에 첫 걸음을 디딘다. 난간 너머 비치는 한강물이 생각보다 가깝다.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탄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친다. 가운데 나 있는 차도로 튜닝한 바이크, 고급외제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난다. 동생은 귀를 막고 걷는다. 자긴 아무래도 높은 다리가 좋다고 천장이 막혀 있어 소리가 더 울린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중간에 돌아가잔 생각을 거두고 걷다보니 어느새 다리 끝에 다다른다.

반대편으로 넘어와 바라보는 야경은 고요하다. 네모네모 규칙적인 아파트의 네모네모 창문으로 정렬된 불빛들이 네모네모 빛난다. 서초 반포동의 야경은 정적인 느낌을 준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경이 이렇게나 다르다. 벤치에 앉아 미래에 용산구민이 될지 서초구민이 될지 실없는 대화를 나눈다. 불규칙한 야경이 좋으면 서초구민이, 규칙적인 야경이 좋으면 용산구민이 나은 선택이겠지.

다리를 따라, 온 길을 되돌아 간다. 기둥받침에 앉아있는 왜가리 몇 마리, 앞 바퀴를 들고 지나는 바이크를 본다. 다리의 중반부를 지날 즈음, 가만히 서, 불규칙한 모습으로 빛나는 용산의 야경과 규칙적인 모습으로 빛나는 서초의 야경을 한 눈에 담는다. 대칭적이면서 비대칭적인 묘한 조합에 서울이 낯설게 느껴진다. 스카이라인 아닌 산자락에 둘러싸여 살던 종로구민은 이 모든 것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같지 않게 선선한 날씨지만, 다리를 왕복하니 천천히 땀이 난다.

땀, 왜가리, 뚜껑 열린 고급외제차, 라이더의 쫄쫄이와 헬멧이 불빛에 범벅되어 그날의 진한 인상을 새긴다. 묘한 기억을 되짚어보며 노트북을 연다. ‘반포대교 아래 다리'를 검색하고야, 진한 인상을 안겨준 그곳이 ‘잠수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제서야,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잠수교가 말 그대로 비가 오면 잠수되는 다리라는 것도, 그래서 홍수 시 한강 수위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강남지구 도시개발촉진사업의 산물이라는 것도, 더 거슬러 올라가 6.25전쟁 때 한강대교가 폭파 되었던 아픔을 교훈을 품었다는 것도, 반포대교에 가려 항공이나 위성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유사 시 군수물자 도하를 위한 안보교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은 스피드를 즐기는 라이더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은 덤으로.

그제서야, 난간 너머 유난히 가깝게 느껴진 한강물도, 막혀있던 천장도, 네모반듯한 서초의 야경도, 튜닝한 바이크와 차의 요란한 소리도, 이해가 된다. 묘한 풍경들의 이유를 찾으니, 모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살지만 이렇게나 서울을 모른다. 

잘 안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잘 안다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은 낯선 모습을 보인다. 낯선 모습을 보인 누구의 탓이 아니다. 더이상의 새로운 모습은 없을 거라 함부로 속단한 내 탓이다. 익숙한 이의 낯선 모습은 다시금 관계의 긴장을 조인다. 난 아직 모를 뿐,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관계에서 내가 가지는 몫일 것이다. 

규칙적인 야경 속에 사는 서초구민은 자신이 얼마나 정적인 빛 속에 사는지 모를 것이다. 불규칙적인 야경 속에 사는 용산구민은 자신이 얼마나 활기찬 빛 속에 사는지 모를 것이다. 웃어도 울어도 내 표정이 어떠한지 모르는 것처럼, 그러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한, 나는 서울을 모를 것이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원진이가


정원진
wonjin_3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