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화가 답이 되길 여전히 네 번째 원진메일 2021. 06. 14. 우리 대화가 답이 되길 - 학회에서 만난 언니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식당에 갔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중이었고, 언니는 내 말에 호응을 하며 식탁에 수저를 놓았다. 휴지 한 장과 젓가락, 숟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내 앞에 놔주며 말했다.
-너 앞에서는 수저 놓는 것도 무서워. 조심하게 돼. 짧은 순간,
머리를 굴려 언니한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되짚었다. 언젠가 살짝 간한 육수에 야채와 버섯
듬뿍 소시지 몇 개만 넣고 끓여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뒤, 나에게 간식거리를 건넬 때마다 고민을
했다는 엉뚱함을 가진 언니였다. 간식도 호밀빵 같은 건강한 빵만 먹을 거라 오해했다며 말이다. 호밀빵도 좋아하고 건강한 빵 맛도 좋아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것들도 무지 좋아라 한다며, 별안간 얻어버린 건강인의 이미지를 깨려 열심히 해명했다. 이번에는
언니가 또 어떤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을 했을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나도 모르는 새 깔끔 떨어댔던 것인지. 예민하게 굴었던 것인지. 머리를 굴렸다. -이것도 글로 쓰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왜 수저를 휴지 위에 놓을까...
엉뚱하고 유쾌한 언니의 말에 순간 바짝 긴장했던
머리가 풀어지고 하하하 웃었다. 말 그대로 하하하 웃었다. 나는
자주 하하하 웃는다.
-에이, 못 써요. 안심하세요.
언니는 안심한 듯 수저를 놓고 물도 따라주었다. 내뱉고 순간 생각했다. 잠시만, 사람들은
왜 수저를 휴지 위에 놓지? 왜긴 왜야, 그냥 위생상 깨끗해
보이라고 그러는 거겠지. 나도 참, 이걸로 뭔 글을 써보겠다고. 그리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조잘조잘 떠드는 언니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저를 놓는 걸로 글을 쓰진 못하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쓸 수는
있겠지요. 언니의 우려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사실 언니의 생각이 마냥 엉뚱했던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대한 내 접근방식이 언니가 예측한 바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왜. 왜. 왜. 만물에 왜라고 물어야 속이 시원하다. 언론학을 전공하며 생긴 습관인
줄 알았는데, 나의 '왜'
본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듯 하다. 고등학교 때 오가며 알던 친구와 어쩌다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 친구가 내 글을 읽고 전해줬다. 자기가
봤던 그대로라고, 궁금하다는 표정, 집중해서 듣는 표정, 들으면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나의 눈이
기억난다고 말이다. 속으로 왜지, 왜지, 대체 왜지, 하는 동안의 눈을 아마 그 친구가 봤던 것 같다. 들킨 것 같아 부끄럽지만 죽기 전에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눈이 빛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안심이다. 그리고 그 눈을 알아챈 친구의 눈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왜' 본능은 쉬지 않고 머리를 드러낸다. 문제는 내 지식으로, 내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무수히 많다는 거다. 왜
라고 묻는다고 다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답이 정해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세상엔 더 많다. 일정 없는 주말엔 늘 해가 높아질 때쯤 깨어나기에 주말의 아침은 어느 아침보다 더 밝고 덥다. 간만의 느껴보는 주말의 늘어짐이었다. 창문을 살짝 열고 다시 누워 뒹굴거리던 중이었다. 4년간 친해지지 못하고 졸업하고서야 친해진 대학 동기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레옹'을 봤냐는
문자였다. 같이 보러 가자는 건 줄 알았는데 본인은 봤고 나랑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는 거였다. 우리의 대화는 왜를 거듭하며 한참을 흘렀다. 왜 라고
묻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묻어두고 지날 것들이 너무 많다. 그저 그렇게 묻어두고 지나면 편할 것을, 끊임없이 왜 라고 묻고 괴로워한다. 왜? "당신의 10분 전 모습은 어젯밤의 상태에서
진행해 온 것이다. 어젯밤의 상태는 그 전날의 상태에서 온 것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당신이 지금 책을 읽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상태도 역시 할머니의 상태로, 결국 우주의 시작인 대폭발까지
가야 끝나는 이야기다. 이것은 뉴턴식 결정론의 다소 황당한 결론이다."
_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118쪽 오늘 나의 물음은 아침에 친구가 보내온 문자에서
온 것이다. 지난 날 나의 물음은 언니의 수저 놓기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들은 꽤 오래 전, 친구가 나의 눈에서 호기심을 발견한 날에서 온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결국 나의 물음은 우주의 시작인 대폭발까지 가야 끝나는 이야기다. 다소 황당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뉴턴식 결정론이라는데. 내 글의 대부분은 작고 희미한 '왜'에서 온다. 묻는 게
지치는 날에는 그런 날에는 내 곁의 좋은 인연들, 그들과의
대화를 답으로 삼기로 한다. 그날의 대화들은 오늘 나의 글이 되었다. 혼자만으론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세상에서, 왜 라고 묻는다고 다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닌 세상에서, 그럼에도 묻고 가끔은 묻고 또 다시 묻는 세상에서, 가끔은 답이 되어주기 위해 우리 대화는 우주와 함께 시작되었을지도. 어제에서 온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원진이가 정원진 wonjin_313@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