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해 질문했던
“우리나라는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은 참 빠르게 잘합니다. 삼성도 그렇게 컸고,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상 받는 한국학생들도 그렇고.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문제를 풀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게 됐잖아요, 문제를 내는 사회와 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이제 막 대학교 2학년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학과장 교수님의 스승이셨던 서울대학교 조동성 교수님(지금은 중국 CKGSB에서 가르침과 연구를 하고 계신다)께서 우리학교로 특강을 오셨을 때 한 질문이었다.
특강은 실시간 질의응답만으로 구성된 형식이었다. 학생들의 질문을 화이트보드에 받고 질문들을 조직화해서 답변해주시는 방식. 오랜 시간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강연. 그러나 내가 했던 질문은 강연이 끝날 때까지 질문으로 남았다.
강연이 끝나고 살짝 소심해진 나를 교수님께서 부르셨다. 싸인된 저서를 건내며 내게 하신 말씀, 지금 당장 답변하기에는 무게감 있는 답이 어려울 듯하여 따로 메일을 보내면 더 생각해보고 답변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어린 날의 당차게 질문했던 학생은 두근대는 설렘을 안고 곧바로 메일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씩 메일을 주고 받았고, 우연히 컨퍼런스에 Keynote speaker로 참석하셨던 교수님과 잠시 다과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대로 고하건대, ‘질문없는 교육의 장, 정체된 혁신 아젠다’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아직 못냈다. (냈으면 내가 국회로 갔겠지)
그러나 조금 더 가볍게 ‘질문하다’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찰은 해볼 수 있었다.
질문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질문하는 이유…
지난 G20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측인 우리나라의 기자들에게 거듭 질문권을 주었으나 침묵했던 일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의식과 자기 성찰적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왜 질문을 꺼려하는 지. 그리고 문제 삼아왔다.
여러가지 맥락이 있겠지만 우리가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제대로 듣지 않아서
둘째, 남의 눈치 때문에
두번째 이유, 남의 눈치에 대해 좀더 깨닫게 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풀어내본다
막학기에 국제경영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매 주 특정 주제에 관해 팀별로 사례를 준비하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팀 발표가 끝날 때마다 Q&A세션이 있었는데,
(그냥 Q&A시간을 준비하면 침묵하다 지나갈 시간을 방지하기 위해 아마) 교수님은 참여점수라는 이름으로 질문참여에 대한 점수를 매기셨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각종 강연이나 세미나 등에서 질문을 하여 얻었던 사소한 기회들, 약간의 주목에 대한 미묘한 선호, 그리고 질문에 대한 이상적이거나 긍정적인 믿음 같은 것들로, 한마디로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주 꼬박꼬박 질문을 했다.
그러나 한 후배의 말을 듣고 난 후 내 태도는 바뀌게 되었다.
그 날은 그 후배 팀의 발표일. “언니, 저 발표할 땐 질문하지 마요!!! 애들이 무섭대요”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자’가 아니라 ‘공격자’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부터 나는 다른 학우들의 질문들을 곰곰히 관찰했다.
학기 말이 되어 갈 수록 남은 참여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아이들의 질문은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고, 10여분간 주어진 질의응답시간에 앞에 선 발표자들은 저마다 당혹스러워했다. 날선 질의 응답의 시간은 지식을 공유하는 장도, 확장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질문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계기가 됐다.
질문은 몰라서 하는 것일까, 알아서 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질문의 씨앗이었던 것은 옛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독히도 엄마 아빠 삼촌 오빠 언니 어른들을 괴롭히며 눈을 반짝였던 ‘왜?’의 Spirit은 바래졌다.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아는 척하게 됐으며, 알고 싶지 않아지기도, 알면서 모른 척 도 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질문의 본질은 퇴색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탐구하고자 질문했을까
혹, 알아서 질문하진 않았는가.
알고도 뻔한 질문, 주목 받기 위한 질문,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할 질문도 정말 ‘질문한다’는 본질에 맞는 것인가.
질문한다는 이유로 때론 침묵하는 자들을 그저 남의 눈치 보는 사람으로, 잘 듣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해버리진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정말 질문한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열린 분위기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면,
그 동안 수도 없이 해왔던 침묵할 수밖에 없이 튀는 것을 꺼려하는 문화와 분위기만을 탓하기에 앞서,먼저 질문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질문의 본질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질문한다는 것이 부드럽고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어느 강의나 프레젠테이션 뒤에 따라 붙은 Q&A시간이,
그저 시간낭비가 되지 않고 진정으로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